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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20>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중화동교회

박경진 2016. 1. 5. 16:59

20.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중화동교회

 

경기도 옹진군 백령도는 남한 최북단에 위치한 섬이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기독교선교의 관문이 되었던 백령도는 19세기 한국기독교 선교역사의 중요한 무대였다. 1816년 맥스웰(Murrey Maxwell)대령이 이끌던 선단에 자비로 승선하여 각 지역의 언어를 수집하고 통상가능성을 탐사하던 클리포드(H.J.Clifford)해군 대위가 백령도에 정박해 있는 동안 성경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이 이 땅에 전달된 최초성경이었다고 한다. 이후 1832년 영국 런던선교회 소속 선교사인 귀츨라프가 동인도회사의 함선을 타고 들어와 통상하기를 청했으나 조정에서 허락하지 않으므로 통상에는 실패하였으나 백령도와 어청도, 고대도 등을 돌며 성경을 나누어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고대도에 상륙했을 때 섬 주민들에게 감자와 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한국에 최초로 감자 씨가 전달된 사연이며 이로 인해 고대도에서부터 감자가 재배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한편 토마스 선교사는 상인 김자평의 안내로 1865년 중국에서부터 서북해안, 백령도를 비롯하여, 황해도와 평안도를 돌면서 두 달 동안이나 언어를 익히고 숨어서 선교지 답사를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866년 그는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백령도를 거쳐 평양에 진입하다가 대동강에서 좌초되어 박춘권의 칼에 순교를 당했으니,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찾아왔던 개신교회 목사로는 최초의 순교자였다.


19세기 초부터 귀출라프 선교사와 토머스 선교사가 백령도에 성경을 전해준 이래 이 섬에 본격적인 복음의 씨앗이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은 1891년 정3품 백령도진의 첨사 자문역으로 참사 벼슬을 지냈던 허득과 김성진 등에 의해서였다. 허득은 진보적 성향의 개화파에 속하는 정치인으로, 기독교에 대하여 호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관군으로 동학란의 평정에 참여하였는데, 황해도 장연군에서 소래교회로 난을 피해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런데 소래교회로 난을 피해 오는 이들에게는 일본군이나 동학군, 관군 등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마음속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백령도에서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1898년 6월 백령도진의 참사 벼슬을 지냈던 허득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곳으로 유배 되어왔던 김성진, 황학성, 장지영 등과 함께 뜻을 같이하면서 한학 서당에 증화동교회를 설립하기로 하였다. 이때 허득과 김성진 등은 중화동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마을에 교회를 세우기로 합의를 하였다. 그리고 허득은 장연군에 있는 소래교회로 달려가서 서경조를 만나 백령도에 교회가 설립되게 되었음을 얘기하고 소래교회건축을 하고 남은 재목을 중화동교회 건축자재로 도와주기를 청원하였다.


마침내 1898년 10월 9일 중화동의 한학서당에서 많은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서경조 장로의 집전으로 설립예배가 드려졌다. 백령도에서는 이 중화동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가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개화의 꽃도 활짝 피웠다. 날마다 활기를 찾아가던 교회는 허득과 교인들이 황해도 장연군의 소래교회에서 교회를 건축하고 남은 건축 자재를 지원받아 옴으로 마침내 1899년 초가 6칸(12평)의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서해 최북단에 떨어져 있는 백령도는 중화동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가 활발하게 발전하여 지금은 해병대 백령교회 등 13개 교회가 있고, 백령도 주민 85%의 복음화율을 나타내고 있다. 2001년 11월 20일에는 백령도 온 교회가 힘을 모아 중화동교회 옆에 ‘백령기독교역사관’을 건립하여 준공예배를 드렸다. 이곳에는 중화동교회역사를 비롯하여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교회역사, 그리고 이 섬에 최초로 발을 들여놓았던 귀츨라프(곽식렵) 선교사와 최초순교자인 토머스(최난헌) 선교사의 흔적 등 백령도 기독교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한편 백령도는 천혜의 청정관광지라고 할 수 있는데, 심청이 빠졌다는 인당수가 바라보이는 곳에 심청이 역사관이 있으며 세계에서 2곳밖에 없는 천연비행장을 비롯하여 콩돌해변가 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국내성지순례지로서 가볼만한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백령도는 한국기독교의 관문이며 초기한국선교역사의 중요한 무대였다. 그리고 현재의 중화동교회는 백령도 교회의 모태이며 백령기독교역사관과 함께 110년의 백령도기독교역사를 떠올리게 하여 앞으로 초대교회신앙 회복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백령기독교역사관

 

▲ 중화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