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구선교의 발원지-대구제일교회, 동산의료원
▲ 대구제일교회 구관
▲ 의료선교박물관
미 북장로교는 우리나라에 선교사를 보낼 때 지역별로 파송했는데 서울에는 언더우드, 평양에는 마펫, 그리고 대구에는 베어드였다. 이렇게 파송된 베어드(W.M. Baird, 1862~1931 한국명: 배위량)선교사가 1893년 4월22일 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주면서부터 대구지역 선교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대구제일교회의 시작이자 대구지역 복음화의 시작이었다.
1897년 베어드 선교사가 처남인 제임스 E 애덤스(J. E Adams, 안의와) 선교사 부부에게 남문 안 교회와 대구지역 선교 사업을 인계인수하고 서울로 옮겨갔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25일에는 존슨(W. O. Johnson) 선교사가 대구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는 1899년 남문 안 예배당(현, 대구제일교회) 옆에 하인들이 쓰던 초가집을 고쳐 ‘미국약방’이라는 간판을 달고 약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한 치료활동이 대구경북지방 최초의 병원인 ‘제중원(濟衆院, 현 동산의료원)’이 되었고 1899~1910년까지 존슨선교사가 초대 병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의료선교의 발판을 닦았다.
동산의료원 뒤뜰에는 ‘의료선교박물관’이 있는데, 이는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세 동의 주택을 개조한 것으로, 선교/ 의료/ 교육 등의 역사박물관은 각각 대구시 유형문화재 24, 25, 26호로 지정되었다.
‘선교박물관’은 1910년경 지은 서양식 건물로서 선교사 스윗즈 여사가 거주하던 곳이었는데 1999년 병원개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선교박물관으로 꾸며졌다. 이곳에는 1900년도에 사용된 성경을 비롯한 선교유물들과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영남지역의 선교역사와 동산의료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물 앞에는 대구 최초의 외국인 묘지 ‘은혜정원’ 이 있는데, 애덤스 선교사의 부인인 넬리딕 여사의 묘 등 10여 개의 묘비가 있다. 묘지 뒤편 왼쪽에 있는 챔니스 선교사의 집은 의료박물관으로, 오른쪽의 블레어 선교사 집은 2001년부터 교육역사박물관으로 각각 운영되고 있다. 교육역사박물관 2층에는 ‘대구 3·1운동 역사관’도 있다.
한편, 박물관 입구에 서 있는 사과나무는 1899년 동산의료원 개원당시 초대 원장인 존슨 선교사가 미국에서 들여온 한국 최초의 서양식 사과나무의 자손 목으로 대구시 보호수로 지정되어있다. 당시 그는 사과나무 72그루를 들여와 사택 뜰에 심고 동산의료원 주변에 보급했는데 이것이 대구사과나무의 효시가 되었던 것이다.
대구하면 사과가 연상될 만큼 사과의 고장인데 이렇게 한국 사과의 효시가 되었다!!
사과나무 옆에는 개원 100주년기념 종탑이 있는데 이는 1999년 ‘전국 담장 허물기’ 행사를 하면서 허물어 옮겨 온 병원정문 및 중문기둥과 담장 일부 위에다 초창기 병원에서 개척한 교회의 종을 기념으로 올려놓았다. 종은 멀리까지 복음이 전파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으며 종탑을 떠받친 두 기둥은 사랑으로 환자를 돌보겠다는 교직원들의 손길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보도에 놓인 25개의 돌은 하나님 나라 확장에 디딤돌 역할을 감당하겠다는 동산의료원의 다짐을 의미하고 한다.
1933년 붉은 벽돌의 성전으로 새롭게 단장한 대구제일교회는 그 당시 서울의 한강 이남에서는 가장 크고 웅장한 건물이었다. 이 교회 건물은 보존할 가치를 높이 평가 받아 1992년 대구시 유형문화재 30호로 지정되었으며 건물 앞에는 1935년 5월에 건립된 애덤스 목사 선교 5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대구제일교회는 일치월장 발전하고 성장하여 마침내 1996년 지금의 장소로 대 성전을 건립하여 이전하게 되었다. 한편, 대구제일교회와 그 옆 담장 사이로 ‘3·1 운동길’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는데, 이는 1919년 3월 8일 대구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계성학교, 신명여학교, 대구고보 학생들이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동산의료원 솔밭에 모여서 서문시장으로 몰려간 역사적 사건을 기리고 있다. 또한 대구제일교회 옆에 있는 신명학교는 1907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부루엔의 부인이 남산동의 사택을 교사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개교를 하게 된 역사적 사안을 간직한 대구 최초의 여학교이다.
이처럼 암울하던 시대 이 땅을 찾아온 한국초기 선교사들은 풍요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포기하고 “땅 끝까지 너희는 복음을 전하라” 고 하신 주님의 명령만을 순종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들고 찾아 왔을 뿐 아니라 병원을 세워 병든 자들을 치료하고 학교를 세워 교육의 길을 열어주었다. 전염병에 시달리며 무지와 가난의 어둠 속에 있던 우리 민족을 위해 전 생애를 걸고 헌신의 삶을 살았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자는 별과같이 영원토록 비치리라.” (단12:3)
주소 :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동산의료원 내 (의료선교박물관)
글 : 진흥홀리투어(주)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관장 박경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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