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 일(一)자형 한옥교회 - 자천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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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격전지였던 경북 영천지역에 위치한 자천교회는 6·25 당시 인민군이 교회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성도들이 지붕에 횟가루로 ‘CHURCH(교회)’라고 써서 미군의 공중폭격을 피하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100년의 신앙을 간직해올 수 있었다.
한편, 신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공간이 협소하여 이듬해인 1899년 4월, 안의와 선교사의 권유로 예배당 건립을 추진했으나 일제의 반대와 유교의식에 젖은 지역주민의 반대로 중단위기에 처했다. 이에 권헌중은 주재소와 신촌 면사무소를 건축해 주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고 1904년 현재의 목조 기와 건물인 ‘일(一)자형’ 교회당을 건립했다. 또한 훈장이었던 권헌중은 1913년 경, 이전에 운영하던 서당을 닫고 자천교회를 중심으로 2년제 신성소학교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50여 명의 남학생을 교육했고, 이후에는 여자반도 함께 모집했다. 권헌중은 제8회 경북노회의 허락을 받아 1922년 자천교회 초대장로로 장립되었다. 자천교회의 실질적인 설립자인 그는 장로 장립 전인 1920년에도 교회 채무를 갚기 위해 자신의 전답 2두락을 팔아 헌금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헌신하며 교회 기초를 튼튼히 하는 데 핵심역할을 하였다. 한편 일제가 무기를 만들기 위해 쇠붙이를 수탈해 가면서 종각을 빼앗겨, 해방 후인 1948년 새로운 종탑을 세웠다. 자천교회는 영천지역의 초대교회로 자리매김해오다 1953년 상송교회(화북면 상송리)와, 1974년 입석교회(화북면 입석리)를 분립했다. 1979년에는 교회당 신축을 위해 애쓰던 중 갈등이 생겨 지금의 화북교회(화북면 자천리)로 교회가 분리되어 나가 교회의 규모가 크게 축소되는 등 오랫동안 신앙적인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자천교회는 2001년 부임한 신점균 목사의 노력으로 2003년에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문화재자료 452호로 지정되었고, 나무와 기와로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에 지붕, 벽, 기둥 등이 많이 손상되고 장마철마다 비가 새는 등 보수 및 복원공사가 필요하던 중 경상북도와 영천시에서 2억4000만원을 지원받고 문화재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2005년 복원공사를 거쳐 2006년 4월1일 준공감사예배를 드렸다.
-주소 : 경북 영천지역의 화북면 자천3리 773번지 자천교회 (담임 손산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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