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한국 최연소 성인 유대철과 아버지 유진길의 순교
소년 14세 성인 유대철(劉大喆 1826-1839)은 성인유진길의 아들로 아버지의 모범과 가르침을 받아 천주교에 입교해 열심 있는 신앙생활을 하였다. 유진길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하는 서울의 유명한 역관(譯官), 중인 가문이었다.
유대철은 천주교에 대해 적대시하는 어머니와 누나로부터 끊임없는 괴로움을 당했는데, 그때 마다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보였으나 신앙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와 누나를 위해 그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면서 많은 교우들의 순교사실과 아버지의 체포소식을 듣게 된 어린 유대철은 순교하기로 결심을 하고 관가에 찾아가 천주교신자라고 자수하였다. 재판관들은 어린 소년을 배교시키기 위해 천만 가지 방법을 다 썼지만, 소년 유대철의 마음은 변치 않고, 형리들의 배교를 위한 갖은 방법에도 변함없이 오히려 의연한 모습으로 형리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였다.
유대철은 어린 나이답지 않게 견디기 어려운 혹형과 고문을 당당히 이겨냈다. 허벅지의 살을 뜯어내며 "이래도 천주교를 믿겠느냐?" 하고 으름장을 놓는 형리에게 "그러면요. 믿고말고요! 그렇게 한다고 제가 하느님을 버릴 줄 아남유?" 라고 대답했다. 화가 난 형리가 다시 시뻘건 숯덩이를 입에 쳐 넣겠다고 하자 "자요"하고 입을 크게 벌려 형리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처럼 견디기 어려운 형벌과 매질로 늘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그는 옥중에서 항상 만족하고 평화로운 표정을 띠었다.
수단방법을 다하던 관원들은 어린 소년을 공공연하게 처형하면 군중이 반발할까 두려워 1839년 10월 31일, 형리들을 옥 안으로 들여보내서 상처투성이가 된 그 가련한 작은 몸뚱이를 움켜잡고 목에 노끈을 잡아매어 죽이게 하였다. 어린 유대철은 그렇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순교자의 반열에 올랐고 이때 나이 14세였으며 한국 최연소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유대철의 아버지 유진길(劉進吉,1791-1839)은 ’용심’으로도 불렸고 또 순교 당시 정3품 당상역관(當上譯官)의 높은 벼슬에 있었던 유명한 역관 집안의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한문수학을 했으며, 학문에 뜻을 두고 특히 철학과 종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세상만물의 기원과 종말에 대해 명확히 알고자 10여 년 동안 불교와 도교를 깊이 연구했다. 그러나 ’만권의 책과 동서고금의 학문이 가슴에 가득한 사람’이라는 세상 사람들의 칭송과는 달리 유진길은 오히려 진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823년 우연히 [천주실의]란 책을 구해 일부분을 읽게 되었고. 그는 사방에 수소문한 끝에 한 교우를 만나 천주교 진리를 터득하며 입교를 하였다. 마침내 그는 1824년 동지사(冬至使)의 수석 역관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고, 거기서 세례받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후 유진길은 북경교회와의 연락을 담당했고 전후 8차에 걸쳐 북경을 왕래하면서 정하상(丁夏祥), 조신철(趙信喆)과 함께 북경의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하였다. 마침내 교황에게 성직자 파견을 간청하는 편지를 북경주교에게 전달했고 그 결과 유방제(劉方濟)신부, 나(모방)신부, 정(샤스탕)신부, 범(앵베르)주교 등이 암암리에 입국하는데 큰 역할을 함으로 성공을 하였다. 그러나 유진길은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7월 17일 체포되고 말았다.
주교와 신부들의 은신처를 대라는 관헌으로부터의 매우 가혹한 고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주교와 신부들이 계속해서 체포되자 의금부에서는 그들과 함께 사형선고를 내리고 집행에 들어갔다. 마침내 유진길은 1839년 9월 22일 정하상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4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들의 순교신앙은 230여년의 한국천주교 역사가운데 깊이 뿌리를 내렸다. 교황방한을 앞두고 천주교의 순교신앙을 돌아본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한국순교자연구소(윤민구도미니코신부)참고-
- 글 - 진흥투어(주) 대표,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관장 박경진 장로
'감리교뉴스 한국교회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교회사87> 연세대 초대총장- 용재(庸齋) 백낙준 박사 (0) | 2016.09.21 |
---|---|
<한국교회사85> 순교자 임광호 전도사와 하리교회의 순교신앙 (0) | 2016.08.18 |
<한국교회사84> 여명을 밝힌 숭실학당(숭실대) 설립자 베어드 선교사 (0) | 2016.07.18 |
<한국교회사83>하나님의 열혈군사-순교자 박관준 장로 (0) | 2016.07.18 |
<한국교회사82> 신사참배 거부한 선비목사 - 봉경 이원영 목사 (0) | 2016.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