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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 65>매봉교회와 한국의 에스더 유관순 열사

박경진 2016. 1. 12. 14:26

65.매봉교회와 한국의 에스더 유관순 열사

 

충청남도 천안지역에 복음이 처음 들어온 것은 1898년 미국 북감리교로부터 파송된 스웨러 선교사에 의해서였다. 이후 병천면에 박해숙 전도사에 의해 복음이 전해지고, 그 결과 1901년 매봉교회가 세워졌다. 유관순 열사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형제와 함께 매봉교회에 출석하면서 하나님을 만났고 또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배웠다. 매봉교회는 충남 천안 지역의 애국애족운동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거점 중 하나였다.

 

▲ 매봉교회 전경

 

예를 들면,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사늑약乙巳勒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 항일운동을 펼칠 때 매봉교회 성도들은 군비를 마련해 의병을 지원했다. 이를 빌미삼은 일제에 의해 교회가 불타버렸지만 매봉교회 성도들은 다시 교회를 세우고 더욱 애국애족정신을 고취했다. 그리고 1907년에는 82명의 성도들이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가담했다가 다시 한 번 교회가 불타는 수난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8년 지역 유지인 유빈기씨, 유중권씨(유관순의 아버지), 조인원씨(조병옥 박사의 부친) 등 매봉교회 성도들은 또 다시 힘을 합쳐 교회를 재건하고 복음의 전파와 애국애족 정신의 고취를 위해 노력했다. 1919년 3월1일은 서울에서 만세운동의 함성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18세 소녀 유관순은 1919년 3월 31일 서울에서 대한독립만세운동의 소식을 안고 고향으로 내려왔으며 바로 다음날 아우내장터에서 벌어질 큰일을 앞두고 매봉교회 예배당 안의 십자가 밑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우리민족의 원수일본을 물리쳐 주시고 이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옵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과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자신을 이화학당에 보내신 것은 오늘의 풍전등화와 같은 난국의 때를 위함이 아니냐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 유관순은 소명감을 갖고 몇몇 동료들과 함께 어둠을 헤치며 매봉산으로 올라가 만세운동을 알리는 횃불을 높이 들어 봉화를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1919년 4월 1일, 매봉산 봉화의 신호로 각 곳에서 부터 아우내장터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저마다 태극기가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한 순간, 모인 사람들 모두는 삽시간에 애국심이 불타는 만세운동의 군중으로 돌변하여 아우내장터는 우레(雨雷)와 같은 대한독립만세 소리로 가득 찼다. 이날 만세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매봉교회 교인을 포함하여 총 3,000여명이나 되었는데, 이중 19명이 일제의 총칼에 맞아 희생되었고 그 가운데 유관순의 부모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관순은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곧바로 일경에 체포되어 그날부터 모진 고문과 협박을 받았다. 그는 “누가 시켰느냐”는 심문에 “하나님이 시켜서 했다”고 당당히 맞서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조국의 독립을 위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 유관순 동상

 

유관순은, “손톱이 빠져 나가고, 코와 귀가 잘리고, 팔 다리가 부러지는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어버리는 고통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1920년 9월 28일 그의 나이 19살, 꽃다운 청춘을 불살라 애국애족의 모범을 보이며 짧은 생을 마쳤다. 소녀 유관순을 애국애족의 열사로 키운 매봉감리교회는 일제에 의해 불타버렸고(1923), 집회금지령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62년 유관순의 모교인 이화여고가 지령리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고 다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여 1967년 11월 이화창립 80주년 기념으로 당시 이화여고 교장서명학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선생님들과 동창, 그리고 학생들의 헌금으로 매봉교회가 재 건립되었다. 또한 1997년 기독교대한감리회 남부연회와 충청연회는 유관순 열사의 신앙심과 애국심을 깊이 전하고 이어받기 위하여 기념교회를 재건축하기로 결의하고, 마침내 1998년 9월 기념교회와 유관순 생가를 복원하여 봉헌하였다.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많은 난관과 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이라는 독립국가를 유지할 수 있는 것, 또한 오늘과 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유관순 열사와 같이 자신을 헌신한 애국 열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순국선열의 애국정신과 위대한 신앙을 본받는다면, 우리에게 어떤 위기가 닥친다 해도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 유관순 생가

 

- 주소: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 338-6 매봉감리교회

 

- 글 :진흥홀리투어(주),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관장 박경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