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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30>국내 유일의 ‘ㅁ’자형 봉화 척곡교회

박경진 2016. 1. 6. 10:06

30. 국내 유일의 ‘ㅁ’자형 봉화 척곡교회

 

▲ 척곡교회와 명동서숙 전경

▲ 한국기독교 사적 제3호 지정 감사예배

 

 

 봉화척곡교회는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청량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대부분의 교회가 서양선교사들의 전도로 세워졌다면 이 교회는 선교초창기 한국인의 자발적인 노력과 결단으로 시작되고 세워졌다는 점이 특이하다. 지금까지 100년의 역사를 꿋꿋이 견디며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봉화척곡교회는 한 마디로 자생교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립역사에 있어서 뿐 아니라 건축형태에 있어서도 독특한 면을 보이는데 대부분의 초기 예배당이 한국식으로 ‘ㄱ’자나 ‘一’자 형태로 건축이 이루어졌던 것과는 달리, 이 교회는 정사각형을 띠고 있는 국내 유일의 ‘ㅁ’자형 교회인 것이다. 예배당과 함께 세워진 교육시설(명동서숙)도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라 하겠다.

 

 봉화척곡교회를 처음으로 세운 창립자는 대한제국 탁지부(현, 재경부) 관리를 지낸 김종숙(1872-1956년)이다. 그는 서울새문안교회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설교에 감흥을 받고 “일제의 사슬을 끊고 나라가 독립하기 위해서는 야소교를 믿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중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낙향을 결심하였다.
 그는 처가마을인 봉화 유목동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고 주일이면 시골 산길 30리를 걸어서 문촌교회를 다녔는데, 몇몇 신도들과 함께 뜻을 모아 기도처를 만들어 신앙생활을 하던 중 1907년 5월 17일 마침내 척곡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909년 3월 29일에 9칸짜리 정방형 기와집 예배당과 6칸짜리 초가집 명동서숙을 건립하였다. 예배당은 원래 마룻바닥에 기와지붕이었지만 나중에 함석지붕으로 교체하고 긴 의자들을 들여 놓았다. 지금의 남쪽 출입문도 처음에는 동서쪽으로 각각 문을 따로 내 남녀의 출입을 구분하였고, 예배실 가운데에 광목을 쳐서 남녀석을 구분하여 얼굴을 마주 보지 않게 하고 예배를 드렸다. 교회 살림은 가난한 산골 신자들의 성미 쌀로 유지되었는데 지금도 예배당 양쪽 벽엔 성미자루가 걸렸던 못들이 남아 있다.
 한편, 예배당 앞에 위치한 초가건물 명동서숙은 일제강점기 후진양성을 위해 지은 교육기관으로서 이곳에서 신교육을 시행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전파해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성경을 가르쳤고, 국어, 산수, 한문을 가르쳤는데 그 당시 이 지역사람들 대다수가 이곳에서 공부를 했고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대에 미래를 향하여 빛을 발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큰 몫을 감당하였다.

 이렇게 어둠을 밝히던 교회는 1918년 무렵에는 한번에 120여 명씩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고 한다. 김종숙 장로는 활발한 선교활동을 하면서 목사안수를 받고 봉화지역 6개 교회의 시무를 맡는 등 봉화지역의 신앙운동과 애국애족운동을 활발하게 펼쳐나갔다. 그러던 중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금에도 앞장서게 되었다. 결국 그는 독립운동가를 숨겨주었다는 명목으로 일경들의 탄압을 받게 되었고 명동서숙도 폐교되면서 일제의 탄압과 핍박을 견디지 못한 신자들이 하나 둘 흩어지는 수난을 겪게 되었다. 하지만, 일제 패망과 함께 해방의 날을 맞으면서 신앙생활을 새롭게 하려는 의욕도 일어 예배당을 부분적으로 증축하고 보수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으나 워낙 산간벽지인데다 신자들도 대부분 흩어져 도심으로 이주해 간 탓에 구국입국 교육입국 신앙입국을 실천하려던 옛 명성을 되찾지는 못했다.

 “봉화척곡교회를 잊지 말라.”는 조부 김종숙장로의 유지를 받들어 장손인 김영성장로(현89세)부부가 연로하신노구를 이끌고 2004년 낙향하여 교회를 지키고 있다. 봉화척곡교회는 한국선교 초기의 교회건축물 연구에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국내 유일의 'ㅁ자형' 교회로 2006년 6월 19일 문화재청지정 제257호로 등록되었다. 한편 장로교단 제91회 총회역사위원회에서도 이곳을 한국기독교역사 사적 제3호로 지정했다. 교회는 2009년 6월 16일 한국기독교역사 사적3호로 지정된 것과 명동서숙을 원형대로 복원한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기념예배를 은혜 가운데 드렸다. 이때 한국 교회사가(敎會史家)인 김수진 교수를 비롯한 교계지도자, 지역기관장 등과 함께 많은 성도들이 기쁨으로 참여하여 그 역사적 의의를 깊이 되새기는 기회를 가졌다.

 

 암울하던 시대 뜻있는 한 사람이 애국심과 의식 있는 사고를 가지고 산간벽지이지만 교육의 열정으로 명동서숙을 세우고 신교육을 통해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는 큰 뜻을 펼쳤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동적이다. 그는 정신문화운동, 생명 살리는 운동으로 교회를 세웠으며, 모진 탄압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투철한 신앙관을 가지고 독립운동 가들을 돕다가 모진고난을 겪기도 하였다. 올곧은 신앙의 자세를 잃지 않았던 김종숙장로의 신앙과 삶은 오늘날 사회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기독인들을 향해 울리는 큰 경종이요 메시지라 할 것이다.

 

- 주소: 경북 봉화군 법전면 척곡1리 833 봉화척곡교회

 

- 글: 홀리투어(주),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관장 박경진 장로 (02-2230-5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