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예수이름으로 죽어간 두암교회23인의 순교자이야기
▲ 두암교회의 전경 ,오른쪽에 순교자 탑이 보인다
전북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 두암 마을의 두암교회는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도에 생각만 해도 끔직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졌던 곳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 참혹한 순교 현장에는 23명의 순교자 합장묘와 기념탑이 세워져 있어서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이곳 두암교회는 전북 정읍 천원교회의 지원으로 1949년 1월 7일 김용은 전도사가 그의 모친 윤임례 집사 가정을 중심으로 첫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두암교회가 시작되었다. 단출한 기와집 가정에서 이웃사람들끼리 모여서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된 두암교회는 김용은 전도사와 가족들의 철저한 신앙의 열정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나날이 발전하며 두암마을 사람들은 점차 예수 믿는 마을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편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서 숨죽이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목이 터져 라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두암교회를 개척하여 섬기던 김용은 전도사는 6. 25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임동선 목사를 초청해 서 부흥회를 하였다. 그런데 부흥강사의 설교에서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인민군이 진주하면서 지역 빨갱이들과 합세하여 두암교회를 비롯하여 마을 전체에 끔찍하게도 피로 물들이는 비극을 빚어내고 말았다.
공산당들은 지역을 장악하면서 두암교회가 공산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고 판단하고 윤임례 집사의 가족들은 물론 교인들을 위협하면서 예배를 방해하다가 중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런 탄압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으며 끌려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지켰다. 1950년 9월 하순경 공산주의자들의 핍박은 더욱 거세졌고 이 과정에서 김용은 전도사의 동생 김용채 집사는 총을 맞고 고부로 옮겨져 치료하던 중 우익인사들과 함께 빨갱이들의 총칼에 희생되고 말았다.
교회를 지키려는 성도들과 악랄한 공산당 사이의 피로 얼룩진 접전은 그 해 10월 19일 그 막을 내리고 말았는데 여기저기에서 몽둥이와 식칼을 들고 나온 공산당, 빨갱이들은 성도들과 아이들까지 모아놓고 예수쟁이는 미 제국주의 앞잡이라고 미친개처럼 날뛰며 몽둥이를 휘둘러대면서 살생을 일삼았다. 결국 윤임례 집사와 그의 가족들 모두가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그리고 살기가 등등한 공산당들은 교회와 성도들의 집 4채에 짚을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불타는 연기와 재 때문에 며칠 동안 동네에서 우물물을 먹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날 윤임례 집사와 둘째 아들 김용채, 또한 며느리 조선환 집사 등 일가족이 모두 학살되었으며 정읍농업고등학교 학생회장이었던 김용술과 김용은전도사의 친구 박호준 씨 등 두암교회 성도들 23명이 처참한 장면을 남기면서 순교자의 반열에 들었다. 얼마 후 시신수습 과정에서 확인 된 것은 윤임례 집사는 무릎을 꿇어 있는 상태로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아 마지막 순간 죽어 가면서도 기도하다가 칼에 찔려 무참하게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함 같이 두암교회 순교자들의 피는 하늘에 상달되었다. 처참하게 짓밟히고 폐허로 버려졌던 곳에는 새로운 예배당이 세워졌고 23명 순교자들의 희생을 기리는 순교탑이 건립되었다. 이로써 한국기독교 선교역사 가운데서 빼놓을 수 없는 성지순례지가 되고 있다. 순교자 윤임례 집사의 아들인 김용은목사와 그의 동생 김용칠목사 형제는 기독교 대한성결교회의 총회장까지 역임하는 등 성결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서명선 목사를 비롯해 20여 명의 목회자가 두암교회에서 배출된 것은 순교자의 피 값으로 맺어진 아름다운 열매라고 할 것이다.
당시 두암교회는 불에 타고 성도들은 대부분 죽었기 때문에 쉽게 복구되지 못하다가 1964년 두암마을 출신인 김태곤 전도사의 집에서 주일학생들이 모여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주일학교가 먼저 재건의 빛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불타버린 교회는 1966년에 비로소 재건을 시작하여 가매장했던 순교자들의 무덤을 교회 동산으로 이장하면서 23인순교자들은 너무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훼손이 심하여 각각 분류할 수가 없어서 합장묘를 만들게 되었다. 1977년에 비로소 희생된 순교자들의 신앙과 정신을 기리며 기독교대한 성결교회 총회차원에서 뜻을 모아 “23인의 순교자기념탑” 을 세우게 되었다. 이 탑은 4각 십자가 모양으로 건립되었는데 그 4각은 성결교회의 4중 복음을 상징하며, 그 아래 돌을 쌓은 것은 23인의 순교자들을 상징하고 탑 꼭대기에 성령의 불을 상징하는 횃불이 조각되어있으며 하단 정면에 봉헌문헌이 새겨져 있고 측면에는 예수이름으로 죽어간 23인의 순교자 명단이 선명하게 조각되어져 순례자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소재지 : 전북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 316 두암성결교회(담임:홍용휘 목사)
글: 진흥홀리투어,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관장 박경진 02-2230-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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