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서울대성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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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1885년 중국에 파견되었던 J.R. 울프 신부가 부산에 와서 2년간 선교하므로 성공회 조선선교의 첫 시작을 알렸으며, 그 후 1890년 C.J 코프(고요한) 신부가 조선에 정식으로 파견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선교가 시작되었다. 대한성공회의 전신인 조선종고성교회(朝鮮宗古聖敎會) 초대 주교로 1890년 제물포항에 도착한 영국의 C.G. 코프(1843-1921 고요한) 신부는 같은 해 지금의 성공회 서울대성당 자리의 작고 낡은 한옥에 십자가를 세우고 장림교회(將臨敎會)라 하여 1891년 11월 1일부터 정기 미사를 드렸다. 성공회 서울대성당(정식 명칭: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이 날을 창립일로 기념하고 있다. 서울대성당은 3·1운동 당시 그리스도교계 학생들의 만세운동의 중심지였고, 한국전쟁 중에는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의 피를 흘리기도 했으며, 1970년대 이후에는 사회정의실현과 민주화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1987년 6월 '민주화를 위한 범 국민대회'인 6.10국민대회 등으로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진보와 보수의 신앙적 갈등 속에서 대립할 때에도 중도를 지키고 포용하며 모범적인 교회모습을 지켰으며, 교파나 교단의 벽을 넘는 교회일치운동(에큐메니컬 운동)에 앞장서 왔다. 또한 교회예산의 3분의 1을 사회봉사와 선교기금으로 사용하며 노숙자와 장애인 시설, 보육원 소년소녀가장, 무의탁 노인들을 돕고, 선교기관, 사회복지기관 등을 지원하며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한편,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제3대 트롤로프(M.N. Trollope, 1862-1930 조마가) 주교의 10여년에 걸친 구상과 모금 끝에 건립이 추진되었다. 그는 1920년 작성한 건축 제안서에서 "한국 고유의 건물 재료와 기후 조건에 가장 쉽게 어울리는 양식이어야 한다."고 하며 성공회의 토착화 선교정책에 따라 한국의 풍토와 전통문화에 대한 존중과 포용성을 보여주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라틴(十)자형 3층 건물로 영국의 아더 딕슨이 설계하고 1922년 착공하였으나, 자금관계로 결국 미완성인 채 1926년에 헌당되었다. 그리고 이후 70여 년 동안 미완의 성전으로 사용하다가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건물의 원 설계도가 발견되어 이를 토대로 마침내 1996년 5월2일 원 모습을 복원했다.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일제 침략기에 서양인에 의해 설계된 동양최초의 본격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또한 내부 제단의 모자이크와 공간구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위계적으로 조합된 외관형태와 함께 처마장식, 창살문양, 기와지붕, 스테인드글라스의 오방색 등 한국 전통건축 요소를 조화시켜 우리의 풍토에 잘 어울리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78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으며, 88서울올림픽 당시 세계 건축가들이 선정한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한편 성당 뜰에는 한국전쟁 중에 순교한 6명의 순교자-이원창 신부, 윤달용 신부, 조용호 신부, 이도암 신부(영국), 홍길로 신부(영국), 마리아 클라라 수녀(아일랜드)의 '순교추모비'와 '6월 민주항쟁 진원지'라는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대한성공회의 역사를 품고 있는 상징적 교회이자 어머니 교회로, 대한성공회 모든 교회활동의 중심일 뿐 아니라, 서울 한복판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과도 함께해 온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가 어둠에 잠길 때에는 빛이 되어주고, 민족이 좌절할 때에는 희망이 되어 주었다.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앞으로도 그리스도의 참빛을 세상에 발하는 우리의 귀중한 유산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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