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 (신문 연재)

94. 선교사 에비슨과 세브란스병원

박경진 2011. 6. 9. 10:33

선교사 에비슨과 세브란스병원
2011년 06월 01일 (수) 13:41:21 박경진 장로 kj4063@hanmail.net
 

 

 
▲ 에비슨(1860~1956)
1884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온 최초의 의료선교사 알렌(Allen)은 조선정부의 도움으로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을 설립했다. 왕립병원인 광혜원은 개원 16일 후에 고종의 지시에 따라 '제중원(많은 사람을 구제하는 집)'으로 개칭됐다. 한편 알렌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후임이었던 헤론이 1890년 7월 이질로 사망한 후 후임으로 온 빈튼은 조선정부와 갈등을 빚어 제중원 운영이 2년간 힘겹게 유지되면서 사실상 존폐의 기로에 있었다. 병원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점점 더해졌고 병원을 주관하는 관리들의 부패는 심각했다. 이 상황에서 1893년 부임한 에비슨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제중원의 운영에 관한 것이었다. 조선정부와 6개월에 걸친 협상을 벌인 끝에 1894년 9월 왕립병원이었던 제중원 운영권이 미국 선교부로 이관되었다. 이로써 제중원은 온전한 사립선교기관으로 재편됐다.

이처럼 제중원의 출발은 알렌이었지만, 기울어가던 제중원을 다시 살리고 제중원에서 국내 첫 의학교육과 고등교육을 실시하여 한국인이 직접 한국인을 치료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한 이는 에비슨이다. 에비슨(Oliver R. Avison 1860~1956)은 1860년 영국에서 태어나 1887년 캐나다로 이주, 토론토 의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학교수와 토론토대학 의사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안식년에 미국에 온 언더우드가 에비슨의 초청으로 토론토대학 선교 모임에 와서 한국 선교에 대해 들려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마침내 에비슨은 1893년 7월 미국 북장로회 의료 선교사로 내한하게 되었다.
   
▲ 완공직후의 세브란스병원 전경

한편 에비슨은 12.5평 크기의 한국식 건물에 병원 시설도 미비했던 제중원을 개조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1899년 3월 말 안식년을 얻어 캐나다로 간 에비슨은 건축가인 친구에게 병원 설계도면을 기증받았다. 그리고 약 1만 달러 예상되는 병원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고심하던 중, 1900년 4월 뉴욕에서 개최된 해외선교회의에서 “한국에서 활동 중인 의사들이 모여 함께 일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든다면 훨씬 효율적인 의료선교 사업이 이뤄질 것”이라는 내용의 강연을 하게 되었다. 당시 이 자리에 클리블랜드 출신의 부호 세브란스(Louis H. Severance 1838~1913)가 있었다. 세브란스는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회계 담당자로 근무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으며, 이 회사의 대주주로서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세브란스는 연설이 끝나자 에비슨을 찾아가 병원설립 계획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믿음으로 이미 설계도까지 완성했다는 에비슨의 말에 다시 한 번 감명을 받은 세브란스는 건축 비용으로 1만 달러의 거금을 내놓았고, 이후 건축과정의 추가 증축비용도 부담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1904년 한국 최초의 현대식 종합병원이 남대문 밖 남산 기슭의 복숭아골 대지에 세워졌고 1913년에는 한국 최초의 의과대학 건물을 완공하였다. 그리고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각각 <세브란스 병원>과 <세브란스 의과대학>으로 명명하였다. 이처럼 한국 최고 수준의 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은 한 의료선교사의 비전과 헌신적인 기독인 사업가의 헌금으로 세워질 수 있었다.

현재 원래의 건물들은 도시계획에 따라 모두 사라졌지만, 서울역 앞에 신축된 세브란스 빌딩과 연세대학 의과대학 부속 세브란스 병원, 그리고 1910년 정신여학교에 기증한 정신여고 구 본관 건물인 세브란스관 등, '세브란스'는 여전히 고유명사로 남아있다. 그리고 세브란스 가(家)의 자선사업은 그 후손들을 통해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병원에는 지난 50년 동안 ‘미국 북장로교회(PCUSA)’ 명의로 매년 후원금이 입금됐다. 그것을 단순히 미국교회에서 보내오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개원 120년을 맞아 병원 측이 알아본 결과 세브란스의 아들인 존 세브란스(John L. Severance)가 만든 기금에서 보내온 것이었다고 한다.

에비슨 선교사는 우리나라 현대 의학과 병원 설립의 기틀을 마련하며 단순히 병원을 건립한 것을 넘어서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전도의 문을 넓히는 선교적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세브란스는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훨씬 더 크다.”며,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미지의 나라 한국에 파견된 자국 선교사 에비슨의 지원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여 실행에 옮겼다. 세브란스가 했던 이 말은 세브란스 병원의 정신으로 자리 잡았으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아낌없이 헌신한 세브란스의 정신은 그의 후손들에게도 이어져 아름다운 기부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해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