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 4대에 걸친 린튼 가(家)의 한국사랑 | ||||||||||||
순천기독교선교역사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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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린튼(W.A. Linton, 한국명: 인돈, 1891-1960)은 1912년 조지아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그해 21세의 나이에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 파송되어 목포에 도착했다. 군산 영명학교에서 성경과 영어를 가르쳤으며 전주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의 교장을 역임했다. 그는 1919년 3ㆍ1 운동의 실상을 미국에 알리기 위해 애썼다. 신흥학교 교장을 하면서 신사참배 거부로 미국으로 강제추방을 당하는 등,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앞장섰다. 해방 후 다시 한국에 돌아와 한국전쟁 때 대피명령이 떨어진 상황에서도 전주에서 성경학교를 운영했으며, 1959년 대전대학(현 한남대)을 세워 초대학장을 역임했다. 1960년 6월 건강악화로 미국으로 가 그해 8월13일 별세했다. 미국으로 떠나면서 한국에서 숨을 거두지 못하게 된 것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말해주듯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여기며 한국을 사랑하며 헌신적인 열정으로 선교에 일생을 바쳤다. 한편, 휴 린튼의 부인 로이스 여사는 94년 은퇴할 때까지 순천결핵재활원장으로 35년간 결핵퇴치운동을 벌였는데, 친지들이 모아준 은퇴기부금으로 순천소방서에 앰뷸런스를 기증한 것은 한국119응급차 운행의 시초가 되었으며, 1996년에는 호암상 상금으로 평양 적십자병원에 구급앰뷸런스를 기증하는 등, 한국민족을 사랑하는 갸륵한 마음이 남달랐다.
한편, 호남지역 선교에 헌신한 선교사들의 자취를 볼 수 있는 『순천기독교선교역사박물관』 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랑과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스스로도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기까지 한국을 사랑했던 초기 선교사들의 신앙과 삶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장소가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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