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문준경순교자기념관과 ‘섬마을 선교의 어머니’ 이야기
▲ 문준경 전도사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천사의 섬’으로 불리는 신안 섬 일대에는 100여개의 교회가 있다. 그 교회들은 개화기의 격변기에 한 여성의 기도와 눈물 그리고 피와 땀으로 시작되었다. 그중 11개의 교회가 있고 복음화율이 90%에 달해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높은 놀라운 섬이 있는데, 바로 증도다. 이 증도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사람 역시 같은 사람이다. 그녀가 바로 ‘섬마을 선교의 어머니’ 문준경(文俊卿·1891∼1950) 전도사(이하 문전도사)이다.
문 전도사는 신안 암태도에서 나고 자랐다. 그녀는 1908년 아직 어린 17세의 나이로, 신랑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양가 어른들의 강권에 따라 중매로 결혼했다. 그러나 원치 않는 결혼이었던 탓에 신혼 첫날부터 남편으로부터 소박을 당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을 버린 남편과 상관없이 시부모를 모시고 20년을 살다가 아껴주시던 시아버지께서 소천한 뒤 홀로 목포로 건너가게 된다.
목포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고달픈 삶을 살던 그녀는 우연히 집에 찾아온 전도부인에게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리고는 북교동성결교회에서 열린 심령대부흥회에 참석하여 당시 부흥사로 명성이 높았던 이성봉 전도사를 만나게 되었고, 마침내 그의 안내로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대)에서 신학공부를 하게 되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복음 선교의 열정을 갖게 된 문준경 전도사는 방학 때마다 고향에 내려와 나룻배를 타고 이 섬 저 섬을 돌며 전도를 하였다. 그리고 학교를 마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신안 일대 섬들을 돌며 복음을 전파하고, 가는 곳마다 교회를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본래 섬 지역은 자연환경의 영향을 직접 받는 곳이어서 바람, 태양, 바다의 신을 믿는 샤머니즘이 오랜 전통으로 토착신앙을 이루어 기독교 신앙 등이 전파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문준경 전도사는 이러한 정설을 깨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문준경 전도사의 전도 길은 평탄치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녀를 배척하고 손가락질 했다. 심지어 때려 내쫓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곳곳에 교회를 개척했다.
그녀는 새벽기도회가 끝나면 큰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심방을 다녔다. 보따리 안에는 연고, 소화제, 항생제 등 온갖 약품들로 가득했는데, 병이 있는 사람들에게 약을 주며 기도해 주었고 산모에게는 산파 역할을 감당하는 등, 병원도 없고 약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섬사람들을 따뜻하게 돌보아 주었다. 또 부잣집이나 잔치자리에서 누룽지며 각종 음식을 챙겨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시간을 아껴 전도를 하려고 갯벌에 들어섰다가 몇 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다. 그녀는 섬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이자 동시에 의사, 간호사, 우체부, 짐꾼노릇까지 마다하지 않는 가족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던지, 한 해에 고무신이 10여 켤레나 닳아 없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그녀의 헌신적인 기도와 노력으로 마침내 신안 일대에 세워진 개척교회 수가 100여 교회나 되었으니 그 열정과 노고야말로 가히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크다 할 것이다
▲ 문준경 비석
▲ 문준경 기념관
문준경 전도사의 복음전도와 교회개척은 6·25전쟁과 함께 위기를 맞았다. 신안 섬마을에 들이닥친 공산군은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했다. 문전도사는 공산군에게 붙잡혀 끌려가다가 국군과 연합군의 진격에 놀란 공산군이 도망친 틈에 목포에서 풀려났지만, 두고 온 교인들을 돌보기 위해 아직 공산군이 점령하고 있던 신안으로 다시 돌아갔다. 돌아온 문전도사를 붙잡은 공산군은 그녀를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라며 반드시 죽여야 할 반동으로 몰아 1950년 10월 5일 새벽2시, 증도면 해안가에서 죽창과 총으로 처형했다. 그러나 그 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의 삶을 제대로 대변해 주는 말이 되었다. 문전도사와 그녀가 세운 교회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김준곤, 이만신, 이만성, 이봉성, 정태기 목사 등 오늘날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100여 명의 영적 지도자들이 배출되었고, 다시 그들로부터 수많은 주의 종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문준경 전도사와 같은 순교자들의 뜨거운 피와 숭고한 신앙을 밑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신안 일대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와 세계 기독교사에 기록될 문준경 전도사의 삶은 《천국의 섬》이라는 책이 발행되면서 재조명 받았고, 이후 CBS에서 <시루섬>이라는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되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또한 2010년에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는 순교자기념사업회를 통해 시작한 기념관건축공사를 3년만에 마무리하고 2013년 5월 21일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준공식과 함께 봉헌예배를 드렸다. 생활관과 순교기념관을 함께 개관하면서 기념관에는 문준경전도사가 사용하던 유물들을 전시하는 등, 문을 활짝 열어 순례자들을 맞고 있다.
-주소: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중리
사진-글 : 진흥홀리투어(주),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관장 박경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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