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개화, 독립, 감리교통합운동의 주역들을 배출한 종교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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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선교의 시작은 미 감리교 아펜젤러 선교사가 1885년 정동제일교회를 세움으로 시작되었고 남감리교 리드(C. F. Reid, 이덕) 선교사에 의해 조선선교가 활성화 되었다. 종교교회는 1900년 리드 선교사 부부에 의해서 조선 땅에 세워진 남감리교회 최초의 교회로, 리드 선교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한편 1930년 남, 북 감리교 통합에 공을 세운 제1대 총리사 양주삼 목사도 종교교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1879년 1월 25일 평남 용강에서 태어나 중국 중서학원에서 공부하고 미국 밴더빌트대학을 졸업하고 종교교회 목사와 협성신학교 교수를 지냈다. 양주삼 목사는 1920년대 말까지 미 남감리회와 북감리회로 분리되어 운영하고 있던 우리나라 감리교회를 단일화 하는데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1924년 남-북 감리교회 안에 '진흥방침연구회'를 설치하는 것으로 시작된 미 남-북 감리교회의 합동운동은 결국 1930년 12월 2일 '기독교조선감리회'로 통합하고 종교교회 4대 목사인 양주삼 목사가 초대 총리사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조선감리교회 자치교회시대를 여는데 역사적인 획을 긋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미국 남북감리교회도 1939년 역사적인 통합을 이루게 되었다. 이처럼 종교교회는 미국 남감리회 모교회로서 한국교회사와 그 흐름을 같이 하고 있으며, 개화운동의 배움터에서 출발한 신앙이 교계통합까지 이끌고 민족운동에 앞장서는 등, 감리교회뿐 아니라 개화기 한국 사회의 중심역할로 한국개신교회사의 큰 족적을 남겼다. 한편 종교교회는 지난해 110주년을 기념하여 '지구본 위의 십자가구원' 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교회 앞에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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