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 (신문 연재)

54. 맹인전도자 "조선의 삭개오" 백사겸의 삶

박경진 2010. 6. 7. 16:01

 

 

성지순례 | 맹인전도자 "조선의 삭개오" 백사겸의 삶과 변화 

2010년 06월 03일 (목) 17:50:43 박경진 장로 kj4063@hanmail.net
   
▲  백사겸(조선의 삭개오)

경기도 고양시에는 능곡교회와 함께 고양교회(구. 고양읍교회)가 100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고양읍교회는 서울 상동교회 출신 권서인 김홍순과 김주현의 전도로 1897년 5월2일 어른 24명과 어린이 3명이 미국남감리회 첫 선교사인 리드(C. F. Reid 한국명: 이덕) 목사가 예배인도하며 시작되었다.

고양교회 초기 성도 중에 백사겸이라는 점쟁이 출신이 있었다. 1860년 평남 평원군에서 출생한 그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눈병으로 실명하였다. 당시 맹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은 ‘복술업’ 즉, 점(占) 치는 일이었다. 백사겸은 15세부터 점술을 배워 평양으로 가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동강변에 자리잡고 점을 치기 시작하였다. 워낙 눈치가 빠르고 말재주가 능해 금세 사람들이 몰렸다. 자신감을 갖게 된 그는 서울과 이천, 원주를 거쳐, 고양읍에서 자리를 잡고 20년을 지냈다. ‘고양읍 백장님’하면 대단한  ‘명복(名卜)’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양반 집에서 가마를 보내면서 초청할 정도였다.

 

그런 신통력을 이용하여 점치러왔던 규수에게 나와 결혼 하지않으면 곧 생명을 잃을 것이라고 겁을주어, 마침내 그를 끌어들여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점점 족집게 점쟁이로 이름을 날리고 유명세를 타면서 그는 대단히 많은 재산을 축적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족을 갖지 못한 그는 다시 ‘태을경(太乙經)’을 외우며 산신령에게 100일 기도를 시작하였다. 100일 기도를 마치던 날 아침, 낯선 방문객이 찾아왔다. 빨간 표지로 된 책을 건네주면서 “이것은 예수 믿는 도리를 적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가 서울에서 내려와 고양읍 일대에서 성경책과 전도지를 팔며 전도하던 남 감리회 소속 매서인 김제옥이었다. 백사겸은 재수없는 불청객이라며 내 쫓았다. 그러나 산신령의 신기한 응답을 기다리며 100일기도를 드린 후 받은 것이라 그에게는 묘한 느낌이 들게 되었다.

며칠 후 백사겸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하늘나라에 갔는데 좌우에 한 사람씩 다가왔다. 우편에 있는 사람이 은산통(銀算筒)을 쥐어주면서 “나는 예수이다. 내가 주는 산통은 의의 산통이니 받아 가지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좌편 사람도 산통을 주었는데 그것은 빈 산통이었다. 그러던 중 장인이 백사겸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의 꿈 내용과 전도책자에 대해 전해들은 장인은 전도책자를 더듬더듬 읽기 시작하였다. 우주에는 천지만물을 만드신 상제가 계시고 그를 섬기는 것이 인간의 근본 도리이며 따라서 우상이나 귀신을 섬기는 것은 상제께 대한 큰 죄라는 내용을 들으며 백사겸의 마음에는 빛이 임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죄를 깨달았다.

 

 “꿈에 얻은 은 산통이 바로 이 책이구려! 이제부터 점치고 경 읽는 일을 그만 두겠습니다.” 꿈에 만난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그는 그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마침 그날은 미국 남 감리회 선교부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설립한 고양읍교회가 창립된 1897년 5월 2일로, 다른 성도들과 함께 그의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믿음생활을 시작한 후, 백사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불경과 산통을 모두 불태웠다. 남을 속여 축적한 재산 ‘3천 냥’의 재산 처분을 위해 기도하던 중 뜻밖의 강도가 들어 재산을 전부 빼앗겼다. 그러나 불의한 방법으로 모은 재물을 불의한 방법으로 사라지게 하심에 도리어 감사하였다. 살던 집과 재산을 모두 청산하여 '삭개오'가 회개 후 하였던 것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전도자로 나섰다.

 

처음엔 “족집게 점쟁이가 천주학에 미쳤다.”는 소문이 돌더니, 얼마 후 “백장님이 예수 믿고 새 사람 되었다”는 소문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그에게는 ‘조선의 삭개오’라는 별명이 붙었다.1899년 정식으로 남 감리회 전도인이 되어 장단과 파주를 거쳐 개성, 평양, 철원, 김화, 평강, 서울 등지에서 전도에 몰두하였다. 그는 어린 아들 백남석(연희전문 영문과 교수)이 성경을 읽어주면 그걸 듣고 외워버렸다. 그래서 ‘걸어 다니는 복음서’라는 별명을 듣기도 하였다. 백사겸은 노래 실력도 뛰어나 100절이 넘는 수 많은 찬송가 곡을 만들어 과거에 경을 읽던 가락으로 불러 제쳐, 청중들의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그는 개성 남부교회, 장단읍교회, 감바위교회 등을 직접 개척하여 세우기도 하였다.

초기 한국교회는 흡연, 음주 중독과 아편중독, 미신과 우상숭배, 지방 관리들의 부정부패, 등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 대단 하였다. 그렇게 선교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믿은 후 개인의 인격과 생활의 전적인 변화로 사회 정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교회의 기초가 단단해 질 수 있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조선의 삭개오" 라는 별명이 붙은 "백사겸의 삶" 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날 예수를 믿으면서도 전인적인 변화 없이 차갑지도 더웁지도 않고 미지근한 신앙인들에게 커다란 깨우침을 주고 있다.

-주소: 경기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51-1 고양교회 (담임: 한광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