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 최초의 성경전래지, 서천 마량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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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지역은 조선 말기 강대국의 해안탐사, 선교사들의 입국 시도와 활동이 활발했던 곳으로 기독교 역사의 유래가 깊다. 특별히 충청남도 서천군은 1816년 우리나라 최초 성경 전수사건, 그리고 1902년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성경번역을 위해 인천에서 목포로 가던중 마량진 앞바다 어청도 부근에서 조난당해 순직한 사건 등, 성경과 관련한 역사적 사건을 지닌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한국 최초 성경 전래비’와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 추모비’가 순례자들을 맞는다. 고증되었는데, 2002년 당시 공주고등학교 교사였던 유승광씨가 조선왕조실록에서 ‘마량진에서 책을 받았다’는 기록을 보고 이 책이 성경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 서천군의 발 빠른 노력으로 이러한 사실이 충남도청과 문화체육관광부에 공식 브리핑되었고, 마침내 ‘서천 마량진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사업위원회’가 조직되어 성역화사업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서해안 일대를 탐사하며 해도(海圖)를 작성하던 군함 알세스트(Alceste)호와 리라(Lyra)호 두 척이 마량진 앞 갑곶에 도착했다. 이후 이곳을 떠나면서 함장 맥스웰(Murry Maxwell)과 바실 홀(Basil Hall)은 마량진 첨사 조대복과 친구 이승렬에게 감사의 표시로 영어로 된 성경을 전했는데, 이것이 현재까지 기록으로 확인된 한국 최초의 성경전수 사건으로 고증 되고 있다.
1832년 독일 귀츨라프 목사가 충남 홍성군 고대도에 상륙하여 한역성경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며 기독교를 전파하려 시도하였고,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천주교박해 정책이 추진되고 있을 때 두 차례나 한국을 방문 하였던 영국의 토마스 선교사는 1866년 9월2일 27세로 한국최초순교자가 되어 목이 잘리는 최후 순간까지도 자신이 가져온 한문성경을 한국인에게 전달하였다.
이렇듯 조선 땅 어둠의 역사를 밀쳐내고 세계 선교사상 유례없는 성장과 발전을 이룩한 한국기독교 역사의 중심에는 ‘성경’이 있었다. 그러한 역사에 마량진 성경전래지는 비록 오랜 세월 묻혀 있어 큰 빛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오늘날 한국 기독교선교 역사의 초석을 놓는 귀중한 지표가 되고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 위 치 :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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