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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24>"조선의 삭개오"라 불리던 맹인전도자 백자겸 이야기

박경진 2016. 1. 6. 09:35

24."조선의 삭개오"라 불리던 맹인전도자 백사겸 이야기

 

 

 

 

 (백사겸 사진)

 

고양교회 초창기 교인들 중에는 백사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사실 그는 당대의 족집게 점쟁이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었다. 점술가 백사겸은1860년 평남 평원군에서 평범한 농사꾼의 아들로 출생했다.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불행한 환경에 처하면서 액운이 겹쳤다. 눈병을 앓다가 보살펴 주는 이가 없는 가운데 그만 실명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맹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라고는 '복술업'즉,점(占)을 치는 일이었다.그는 주위의 도움으로 15세부터 점술을 배우는 길로 들어섰다.

그가 평양의 대동강변에 자리를 잡고 점을 치기 시작하자 금방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자신감을 갖게 된 그는 서울로 왔다가 다시 이천과 원주를 거쳐, 고양읍에 자리를 잡고 20년을 지냈다. '고양읍 백장님'하면 '명복(名卜)'이라는 소문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유명세를 타면서 양반 댁에서는 가마를 보내어 초청할 정도였다.

 

 어느 날 부잣집 규수가 점을 치러 왔다. 그는 의도를 가지고 점을 치기 시작했다. 신을 내리는 과정에서 백씨는 응답이라며 '앞못 보는 사람과 정혼을 하지 않으면 당장 생명이 위독할 것' 이라고 딸의 어머니에게 전달했다. 결국 백사겸은 마침내 그 규수와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으며 족집게 점쟁이로 이름을 날리며 재산을 쌓아갔다.

   그런데 재산이 늘어나도 만족을 얻지 못한 그는 '태을경(太乙經)'을 외우며 산신령에게 비는 100일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100일 기도를 마치던 날 아침, 낯선 방문객이 찾아와 빨간 표지로 된 책을 건네주며 "이것은 예수 믿는 도리를 적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낯선 방문객은 서울에서 내려와 고양읍 일대에서 성경책과 전도지를 팔며 전도하던 미국 남 감리교회 소속 매서인 김제옥이었다. 백사겸은 재수 없는 불청객이라며 소리를 지르고 쫓아버렸다. 하지만 산신령의 응답을 기다리며 지극정성으로 100일 기도를 드린 후 첫 번째 받은 것이 예수 믿으라는 '전도 책'이라는 데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 책은 「인가귀도」라는 소책자 였다.

 

 며칠 후 백사겸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하늘나라에 갔는데 좌우에서 한 사람씩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우측 편에 있는 사람이 은산통(銀算筒)을 쥐어주면서 "나는 예수다.

내가 주는 산통은 의의 산통이니 받아 가지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좌편의 사람도 산통을 주었는데 그것은 빈 산통이었다. 마침 꿈에서 깨어난 후 며칠 후 그의 장인이 집을 방문 하였다. 너무도 이상하고 선명한 꿈이어서 그는 자신의 꿈 내용과 이전에 받았던 전도책자에 대해 장인에게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가 건네준 전도책자를 받아든 장인이 사위 앞에서 더듬더듬 읽기 시작하였다. 우주에는 천지만물을 만드신 상제가 있고 그를 섬기는 것이 인간의 근본 도리이며 따라서 우상이나 귀신을 섬기는 것은 상제께 대한 큰 죄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순간에 백사겸의 마음에 빛이 임했다.

비로소 자신의 죄를 깨달았던 것이다. "꿈에 얻은 은산통이 바로 이 책이구려! 이제부터 점치고 경 읽는 일을 그만두겠습니다." 그렇게 꿈에서 만난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그는 바로 그 주일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마침 그가 교회에 나갔던 첫 날은 미국 남 감리교회 선교부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설립한 고양읍교회가 창립예배를 드리는 1897년 5월 2일이었는데, 그는 다른 성도들과 함께 온 가족과 더불어 세례를 받았다.

 

 믿음생활을 시작한 후 백사겸의 삶은 180도로 달라졌다. 불경과 산통을 모두 불태웠다. 그리고 남을 속여 축적한 재산 '3천냥'의 재산을 처분하기 위해 기도하던 중 뜻밖의 강도가 들어서 재산을 통째로 가져갔다. 그러나 백사겸은 불의한 방법으로 모은 재물이 뜻밖에 사라지게 된 것을 감사했다. 그리고 자기가 살던 집도 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 무조건 내어주었다. 이렇게 예수 이름으로 거듭난 족집게 복술가 백사겸은 예수를 만난 기쁨과 새사람이 된 감격으로 재산도 집도 다 버리고 전도자로 나섰다.

 

 백사겸에게는 '조선의 삭개오'라는 별명이 붙었다. 처음엔 '족집게 점쟁이가 천주학에 미쳤다"는 소문이 세상에 퍼졌다. 그러나 얼마 후 그 말은 "백 장님이 예수 믿고 새 사람이 되었다"는 소문으로 바뀌었다. 1899년 정식으로 미국 남 감리교회 전도인이 된 그는 장단과 파주를 거쳐 개성, 평양, 철원, 김화, 평강, 서울 등지에서 전도에 몰두 하였다. 그가 나타나는 전도 집회에서는 성령의 역사가 불같이 임하였다. 그는 밤새도록 찬미가를 불렀고 성경구절을 줄줄 외웠다. 집회에 참석하는 이들은 그의 설교와 간증을 들을 때 가슴속 깊은 곳에 박힌 뿌리 깊은 죄까지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한편 그의 어린 아들 백남석(연희전문 영문과 교수)은 백사겸이 성경을 읽어주면 그것을 듣고 모두 외워버려서 '걸어다니는 복음서'라는 별명을 듣기도 하였다. 타고난 노래 실력을 자랑하던 백사겸이 100절이 넘는 찬송가의 가사를 여러 장 만들어서 과거 경읽던 가락으로 구성지게 부르면 청중들은 황홀한 감동에 젖었다고 한다.

백사겸은 개성 남부교회, 장단읍교회,감바위교회, 등을 직접 개척하기도 했다.

 

 초기 한국교회는 과다한 음주와 아편중독, 미신과 우상숭배, 지방 관리들의 부정부패 등을 개선하기 위한 절대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이 같은 시대에 기독교인들은 개인의 인격과 생활의 전적인 변화로 사회 정화에 놀랍도록 기여했고, 이를 통해 한국교회의 기초가 단단해질 수 있었다. 백사겸의 엄격히 구별된 변화의 삶은 오늘 날 예수를 영접하고 기독교인으로 살면서도 전인적인 변화없이 차갑지도 덥지도 않게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인들을 깨우치는 경종이 될 것이다.

 

주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51-1

 

 

 

 

- 글: 진흥홀리투어,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관장 박경진 장로  (02-2230-5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