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전북완주 하리교회탄생과 순교자 임광호전도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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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25가 일어나기 두 달 전인 1950년 4월16일, 와리장로교회 집사였던 백한나, 전경순, 유정례 씨와 함께 백한나 씨의 논에 천막을 치고 하리교회(기성)를 개척하고 6월 초순, 와리와 하리 중간지역에 건평 20평의 성전건축 기공식을 가졌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논밭에까지 찾아가서 성심껏 치료하는 그의 모습에 많은 주민과 청년들이 따랐으며 교회도 점차 부흥하였다. 이에 공산당은 그를 더욱 감시하며 기회만 있으면 끌고 가 온갖 말로 회유하거나 협박했다. 얼마 후 6.25전쟁이 발발했다. 가족과 성도들은 공산당들의 핍박이 계속되자 피난을 권했으나 임 전도사는 “목자가 양떼를 버리고 어디를 가느냐!”고 하였다. 8.15해방 후 신앙의 자유를 찾아 가족을 두고 죽음의 38선을 넘었던 임 전도사로서는 신앙과 교회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교회를 지키며 임 전도사와 성도들은 피난을 가지 않고 이제 막 시작한 성전건축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1950년 7월10일, 잠깐이면 된다는 공산당의 말에 임 전도사는 러닝셔츠 차림으로 끌려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사모는 수소문 끝에 삼례국민학교 치안대 독방에 갇혀 있는 그를 만났다. 임 전도사는 “걱정하지 마라. 곧 나가게 될 거다.”하며 오히려 성도들의 안부를 일일이 물었다. 그러나 이것이 사모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함께 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백한나 집사 등에 따르면 임 전도사는 감옥에서도 신앙을 굳게 지켰으며, “예수만 안 믿는다고 하면 당장 살려준다.”는 협박에 오히려 “당신들도 예수 믿어야 산다.”며 자신을 고문하는 자에게까지 전도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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