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하루도 안 거르고 하루 5시간씩 시묘살이 부인 장옥자 여사의 ‘현충원 망부가(望夫歌)’
13일은 박 회장 타계 1주년 되는 날. 장 여사는 남편이 묻혀 있는 서울 동작동 현충원 묘소를 하루도 빠짐없이 찾았다. 10여 차례 만나 박 회장과 57년 생을 함께한 그의 ‘현충원 망부가(望夫歌)’를 지켜봤다. 전날 내린 폭설과 강추위가 맹위를 떨쳤던 6일. 오전 11시쯤 되자 이날도 어김없이 장 여사가 탄 검은색 세단이 현충원 입구에 들어섰다. 차는 국가유공자 3구역을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
매일 그곳에서 5시간가량을 보낸다. 믹스 커피를 타는 일부터 한다.
주황색 보자기 위에 살포시 놓고 한참 동안 묵념한다. 장 여사는 “아버지가 참 커피를 좋아하셨다”고 했다. 천막 안은 방문객을 맞이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33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충남 천안에서 온 30여 명이 묘소를 찾았다. 장병효 포스코TMC 대표는
박 회장 묘소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물이 담긴 보온병을 늘 준비했다. 테이블 위 손님맞이용 간식 그릇엔 쥐눈이콩·아몬드가 담겨 있었다. 장 여사의 이 같은 시묘살이에 현충원 관계자는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묘소를 방문했어요. 아버지에게 인사하러 왔는데 아무도 맞아주지 않으면 어떡하겠습니까. 방문객에게 커피 한잔이라도 대접해야겠다고 곁을 지켰던 것이 벌써 1년이 됐네요.”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 지금도 집에서 어쩌다 생일 때 받은 선물 같은, 추억이 담긴 소지품을 발견하면 충격 받아요. ‘내가 존재하는 게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명예회장의 사진을 슬쩍 보여줬다. 그는 “내겐 세상에서 둘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아버지랑 두말없이 결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63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박 회장은 이후 포항제철을 세우며 기업인의 삶을 살았고, 민자당 최고위원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이 원에 전념할 수 있게 나를 좀 보좌해주시오.”
살림살이를 하면서 남편의 원칙에 늘 따랐다. 내 명의로 된 부동산은 다 없애라”는 박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해버렸다. 장옥자 여사
둘째 딸 소유 한남동 맨션에서 살았다. 이렇게 말했다고 장 여사가 전했다. 늘 마음에 걸렸다.
서울 청운동 낡은 단독주택을 샀다. 하지만 박 회장은 그 집을 자기 명의로 하는 것에 끝끝내 반대했다. “우리에게 10년 세 주는 걸로 해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했다.
전에 지병인 폐부종 증세가 악화돼 생을 마감했다. 앉아 잘 정도로 엄격했지만, 배려하는 남편이었다. 신사 남편이었다”고 회상했다.
나 하나 보고 시집온 아내를 어디 이길 데가 없어서 이겨야 하나. 내가 양보한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자식들에게 꼬박꼬박 엽서를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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