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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 36>4대에 걸친 린튼 가(家)의 한국사랑- 순천기독교선교역사박물관

박경진 2016. 1. 6. 10:30

36. 4대에 걸친 린튼 가(家)의 한국사랑- 순천기독교선교역사박물관

 

윌리엄 린튼(W.A. Linton, 한국명 : 인돈1891-1960)은 1912년 조지아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이다. 대학을 졸업한 그가 21세의 젊은 나이에 미국 남장로회 파송선교사로 한국 땅을 밟고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 목포였다. 그는 한국 선교사로 일하면서 먼저 군산 영명학교에서 성경과 영어를 가르쳤고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전주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의 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 순천기독진료소, 기독교역사박물관

 

 이처럼 교육에 몸담고 있던 그는 1919년 3ㆍ1 운동의 실상을 미국에 알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였다. 그 뿐 아니라 린튼은 신흥학교 교장을 지낼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미국으로 강제추방을 당했지만 그는 평소 한국 독립을 위해서 앞장서서 학생들에게 애국심과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기도 하였다. 1945년 해방 후에는 다시 한국에 돌아와 혼란하던 시기에 교육과 선교에 힘쓰던 중 한국전쟁을 맞았다. 그는 대피명령이 떨어진 상황에서도 전주에서 성경학교를 운영하는 대담성을 보이기도 했다. 1959년에는 대전대학(현 한남대)을 세워 초대학장을 역임하는 등 남다른 한국 사랑과 교육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60년 6월 건강악화로 치료차 미국으로 건너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8월13일 6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으로 떠나면서 한국에서 생을 마치지 못하게 된 것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말해주듯 린튼은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여기고 한국을 사랑하여 헌신적인 열정으로 선교와 교육에 일생을 바쳤다.

그는 1922년 결혼한 샬롯(유진 벨 선교사의 딸)과의 사이에 아들 넷을 두었는데, 모두 다 한국에서 나서 고등학교까지 한국학생으로 공부하며 성장했다. 그 중 넷째 드와이트 린튼(인도아)은 미국 유학 후 돌아와 25년간 한국에서 교육과 의료 활동에 헌신했으며 호남신학대 학장을 지냈다(2010.1. 별세). 셋째 휴 린튼(인휴) 역시 미국유학 후 1953년 내한하여 순천지방의 농촌선교사로 활동하였다. 1970년에는 <등대선교회>를 창립하고 전국적으로 ‘1천 교회 개척운동’을 전개함으로 그 결실이 무르익어 가던 1984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별세하여 순천에 안장되었다.

 

 한편 한국선교를 위해 헌신한 조지 왓츠를 기념하기 위해 1925년에 건립된 작고 아담한 건물에 휴 린튼 선교사 부부가 『순천기독진료소』를 세우고 1960년부터 결핵퇴치사업에 힘을 쏟았다. 1층의 진료소는 지금까지도 사랑의 손길을 전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2, 3층은 『순천기독교선교역사박물관』으로 꾸며져 각종 선교역사 사료와 선교사들의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앞뜰에는 조지 왓츠의 기념비를 비롯해서 순교비 등 열한 분의 선교사 비석이 서 있다. 한편, 휴 린튼의 부인 로이스 여사는 1994년 은퇴할 때까지 순천결핵재활원장으로 35년간 결핵퇴치운동을 벌였는데, 친지들이 모아준 은퇴기부금으로 순천소방서에 앰뷸런스를 기증하여 한국119응급차 운행의 시초가 되기도 하였다. 그녀가 앰블런스를 기증하면서 “남편인 휴 린튼이 교통사고로 죽어갈 때 이런 앰뷸런스가 있었다면 아마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며 앞으로 이런 위급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데 쓰이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또한 1996년에 수상한 호암상 상금으로는 평양 적십자병원에 구급앰뷸런스를 기증하였는데 그녀의 한국사랑은 이처럼 유난히 남달랐다.

 휴 린튼의 둘째 아들 스티브는 1995년 외증조부인 유진 벨의 한국선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유진벨재단』을 설립하였고 북한의료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또 그의 동생 존(인요한)도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장으로 있으며,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 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들 형제는 모두 한국여성과 결혼을 하였다.

 이처럼 유진 벨과 린튼 가문은 4대에 걸쳐 일제의 억압과 해방,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 등 한국 근대와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 겪으며 한국인을 위해 항상 도움의 손길을 펼쳤다. 선대에는 한국의 복음화와 근대화 그리고 인재 양성을 도왔고, 이제는 『유진벨재단』을 통해 북한을 도우며 통일한국의 문을 여는 일을 하는 등 린튼가는 말 그대로 대를 이어오면서 한국과 함께 하고 있다. 이들 선교사 가문이 심어준 믿음은 우리나라가 민족적인 역경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원동력이 되어왔다.

앞에서도 언급한 『순천기독교선교역사박물관』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랑과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스스로도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기까지 한국을 사랑했던 호남지역 초기 선교사들의 신앙과 삶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장소가 되고 있다.

 

 

-주소: 전남 순천시 매곡동 142-5

 


-글 : 진흥홀리투어(주),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관장 박경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