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장로회 기도회

박경진 2009. 8. 19. 16:04

서울연회장로회가 주축이되어 평신도 지도자 금식기도회 준비기도회로 임원들 100여명이 기도회로 09. 8. 18. 18시에 감리교본부 16층 회의실에서 모였다. 사회: 염영식장로, 대표기도: 장금옥장로, 설교: 박경진장로,

인사: 김태진회장, 기도회인도: 최광혁장로, 마감기도: 문 억장로 등이 순서를 맡아 수고하였다.

 기도제목: 1. 주여! 우리나라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2. 주여! 감리교회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3. 주여! 교회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4. 주여! 우리들을 용서하옵소서, 5. 주여! 우리를 새롭게하사 주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열정적으로 뜨겁게 기도하는 평신도 지도자들 

 

서울연회 여선교회장 장금옥장로 대표기도

   

 

메시지 전하는 박경진장로

 

 

 

 서울연회장로회 회장 김태진장로 인사말씀

 

 

최광혁 총무 특별기도회 인도  

 

장로회 서울연회 직전회장 문 억 장로의 대표기도후  마침

 

 

 

              메시지 -  경 : 누가복음 10: 29~37  제  목 :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지난3월, 저는 <강도 만난 감리교회를 누가 살리겠습니까?> 라는 제목의 팜플릿을 만들어 배포한 일이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갈등과 파행,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감리교회사태를 지켜보면서, 장로회전국연합회장의 무거운 책임감으로 참으로 절박하고 애끓는 심정으로 글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오늘 감리교사태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여전히 안개 속에 있음을 보면서 더욱 가슴이 답답해지고 있는 게 또한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절박한때에 장로회 서울연회연합회가 김태진회장을 중심으로 임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자고 하는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하며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서울연회장로님 여러분! 우리기도 많이 하십시다. 희망이 보일 듯 보일 듯 합니다. 감리교회 참으로 잘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편 저 스스로도 이 오랜 파행과 갈등을 겪으면서 지칠 대로 지친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말씀도 이 말씀을 택했습니다. 감리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의 본문에서 은혜가 되시고 기도의 핵심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에게 말씀이 부족한 게 아닙니다. 저는 주일날 아침이면 설교를 최소한 여섯 번을 듣습니다. 6시부터 김삼환목사님, 박영선, 정삼수, 김진홍, 김중기, 장경동목사님 등 설교 전문인들의 설교를 듣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설교말씀보다는 기도하자고하는 다짐으로만 만족하기 바랍니다.


1. 율법사의 질문

  본문에서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제가 사랑해야 될 이웃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어디까지가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입니까?” 라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기 동족만이 자기 이웃이라 생각했고, 바리새파들은 율법을 준수하는 사람들만이 자기 이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광야에서 생활했던 에세네파라는 공동체는 자기공동체에 가입한 사람만이 자기이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2. 예수님의 답변


1) 제사장과 레위인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은 약 27km 거리의 인적이 뜸한 유대광야 지대였는데, 거기서 강도들은 옷을 벗기고 때리고 빼앗고 거의 죽을 지경인 것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그때마침 한 제사장이 그곳을 지나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지만 그냥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이번에는 레위인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를 보고는 외면하고 급히 발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 모두가 자기 나름의 급한 일들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제사를 드려야 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등 자신이 처리해야 할 일들이 코앞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혹시나 이 사람을 도왔다가 자기도 강도들에게 피해를 입을까 겁이 났거나,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이기에 도와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거나, 자기보다 덜 바쁜 누군가가 도와주겠지 하고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처럼 핑계를 대려면 수백 가지 핑계를 댈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이유를 갖다 대고 요리조리 피해갑니다. 이것이 죄 된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지금 바쁘다는 핑계로 죽어가는 이웃의 소리를 외면하고 그냥 지나쳤다는 것은 책임회피와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124년 전, 아펜젤러 선교사는 미국의 행복한 보금자리를 떨치고 일어나서 복음의 횃불을 높이 들고 이땅에 왔습니다. 주님은 누구나 부르시지만 콕 찍어 자기를 부르고 있다고 받아들이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펜젤러는 주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는 응답으로 이땅을 찾아왔고, 풍토병, 전염병이 창궐하고 무지와 가난 속에 찌들어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교육과 의료 ․ 문명의 전도사로, 복음의 사역자로 와서 이땅의 어둠을 밝히고 한국감리교회의 초석을 놓는데 헌신하고 생명까지 내어 놓았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함 같이 목숨바쳐 희생하신 분들의 보상으로 5,800교회 150만 성도라는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감리교회는 그렇게 성장하였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와 같은 많은 선교사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항상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고 우리교회와 감리교단을 위하여 자신을 비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 계획을 핑계로 중요한 하나님의 과업의 기회를 놓쳐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 바쁘다고 생각하는 그때에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혹은 병든 자의 모습으로, 또는 어린소자나 절망에 빠진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찢기고 상처 입은 감리교회의 모습으로, 주님께서는 바로 우리 앞에 서 계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주님의 모습을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중요한 일보다 그저 바쁜 일에 쫒기면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좀 달라야 하는 것 아닙니까? 누군가의 요청을 받으면 언제든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움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웨슬리의 개혁정신은 물론, 아펜젤러의 그 희생정신과 그 신앙을 잊어버린 일부지도자들이 자아에 도취되어 명예의 유혹에 빠져서 온갖 불법과 탈법을 적당히 얼버무려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려 하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런 일입니다. 지난 1년간 우리감리교회는 행정이 마비되도록 다 빼앗겼습니다. 매 맞고 찢기고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거반 죽은 그로기 상태에 빠져있는 것 아닙니까? 그대로 두면 정상으로 회생이 불가할 지도모릅니다.


강도는 때리고 빼앗고 사정없이 내동댕이 처박아놓고 죽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습니다. 감리교인들의 신앙이 황폐해지거나 말거나, 이미지가 땅에 떨어져 자부심은커녕 차마 감리교인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모습이 되거나 말거나 관심 없이 짓밟아 버렸습니다.


  강도만난 감리교회가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방치되고 있는데 어디 선한사마리아인 없습니까? 평신도 지도자여러분! 서울연회장로회임원여러분! 아펜젤러와 같이 감리교회를 살리기 위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기도하며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지체하거나 넋 놓고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장로님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상처 입은 우리 감리교회를 살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합심하고 협력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2) 선한 사마리아인

  세 번째로 그곳을 지나가던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는 원래 북왕국 지역이었는데 아수르에 의해 멸망하면서 집단 이주정책에 의하여 혼혈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해박한 성경지식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의인이라 자부했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아닌, 버림받은 민족이라 생각했던 사마리아인이 오히려 율법을 실천한 것입니다. 강도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위하여 발 벗고 나섰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의 것을 내어주면서 헌신적으로 도왔습니다. 예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곧 그런 사람입니다. 그가 곧 이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바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고 하셨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처럼 말입니다.


3. 감리교 사태에 주는 교훈

  우리가 혹시 감리교회 사태는 어떤 위대한 지도자들에 의해서만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뒷짐 지고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습니까? 감리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평신도 한사람 한 사람의 기도와 그 작은 힘이 모아지고 연합할 때 비로소 아픔을 겪고 있는 감리교회사태가 속히 해결되리라고 믿습니다.


  어떤 외국인에게 한국사회의 가장 특징적인 것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가족주의’ 라고 대답하더랍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혈통만 끔찍이 안다는 것인데 이것은 장점이면서 크나큰 단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족주의가 확대된 것이 소위 말하는 지연과 학연 등으로 엮인 사회관계입니다. 속칭 패거리문화를 만들어 자기편이 아니면 적이고, 집단문화에 따르지 않으면 왕따를 시킨다는 것입니다. 패거리문화는 진리의 소리를 가로막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 내에도 비일비재합니다. 지금까지 끌어오고 있는 감리교회 사태의 근본 원인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주님 안에서는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야만 생명을 살리는 교회의 본래의 기능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사태가 지속된다면 감리교회는 선교는 커녕, 짠맛을 잃은 소금처럼 쓸모가 없어서 안팎으로 외면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곤경에 빠진 감리교회를 향하여, 강도 만난 자를 헌신적으로 도왔던 사마리아인의 마음을 품어야 할 것입니다.

▶ 맺음말

  지금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과연 누구입니까?  주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라는 비교적 긴 예화를 말씀하신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이 한 마디에 있습니다. 행동은 말보다 더 큰 위력을 냅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쓰러져 신음하던 사람을 구해 준 것은  제사장도 아니고, 레위인도 아니었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섬기며 봉사하는 평신도 여러분들과 같은 분들이었습니다.


  감리교회란 부패하고 혼란했던 영국사회를 변화시켰던 웨슬리의 신앙운동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은 신실함으로 이 신앙을 가지고 교회를 지켜왔습니다. 오늘도 우리 평신도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로 교회를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강도 만나 쓰러져 신음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감리교회를 위하여 우리가 선한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혼란에 빠져있는 감리교회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다짐으로 오늘밤 뜨겁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