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 (신문 연재)
39.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 - 제중원
박경진
2010. 3. 22. 12:06
성지순례 |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 - 제중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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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4월5일 언더우드, 아펜젤러가 한국최초 선교사로 입국하였다. 언더우드는 이곳에서부터 과학교사로 일을 시작하였는데, 이처럼 제중원은 아직 선교의 자유가 없던 시대에 선교사들이 때를 기다리는 곳이기도 하였다. 1886년에는 제중원 의학교가 설치되어 선교사, 의학박사들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학교육이 이루어졌다. 1887년 10월, 알렌이 주미 한국공사관 관리가 되어 미국으로 떠나자 헤론이 그 책임을 맡았으나 1890년 7월 이질로 세상을 떠나자 다시 알렌이 원장을 맡았고 1891년 5월부터는 빈튼(C.C. Vinton)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빈튼은 완고한 복음주의자로 제중원 진료는 관심 밖이었다. 이에 따라 제중원 주사(主事: 정부의 행정관리)들의 무성의와 부패가 겹치면서 제중원은 점차 유명무실한 의료기관으로 전락하였다. 이후 1893년 11월부터 책임을 맡게 된 에비슨(O.R. Avison)은 제중원의 개혁을 위해 운영권을 미 선교부로 넘겨줄 것을 조선정부에 요청했다. 6개월의 협상 끝에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조선정부는 1894년 9월말 제중원에서 손을 뗐다. 이로써 제중원은 설립 9년 만에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가 단독 운영하는 민간병원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후 미국인 실업가 세브란스(Severance, L.H.)의 재정지원으로 1904년에 남대문 밖 복숭아골[도동]로 현대식 병원을 지어 옮기고 세브란스병원이라고 하였다. 이름은 바뀌었어도 일제 강점기까지 세브란스병원은 흔히 제중원이라 불렸다. 한편 1908년 6월3일 제중원(세브란스병원) 의학교를 졸업한 7명의 졸업생은 한국 최초로 의사 면허를 받았다. 제중원은 1885년부터 1904년까지 20년 동안 지금의 헌법재판소와 서울역광장 자리에 있으면서 서양의료가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처럼 우리나라 선교는 학원선교와 의료선교의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서양종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분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탁월한 선교전략이었다. -주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134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