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성지순례

국내성지 강경, 병촌교회 방문

박경진 2009. 10. 17. 10:02

   -국내성지순례, 강경, 병촌교회 방문-

국내성지를 찾아서 강경을 향했다. 일본 침략시대 강경포구를 통하여 쌀을 수탈해 가던 그 잔재가 아직도 거리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곡물저장 창고, 당시의 은행 건물 등이 그것이다. 강경교회의  선진 신앙을 지켰던 이들의 흔적을 돌아보며 특히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최초로 초등학생 62명이 벌인곳, 역사적인 흔적을 볼수 있었다. 초등학생 62명중에서 강경교회 학생이 57명이나 되었다. 또한 병촌교회  66명순교자 기념탑 앞에 서서 묵념으로 기도드린다. 믿음을 지키다가 숨져간 여자 신도39명(구약성경) 남자신도 27명(신약성경) 등이 순교하였는데 그 수가 신구약성경의 수자대로 합계가 66명 이라고 하는 데서 또다른 의미를 찾으려고 살핀다.

 

 

 

이곳 강경은 일본의 수탈정치 시대에 이 강경 포구를 통하여 쌀을 수탈해 갈때  이용되었던  일본시대의 그 흔적이 아직도 많습니다. 이곳은 그 당시 사용되던 은행입니다.

 

 

 

 

 

 

 

 

 

 

바로 병촌교회 66명의 생명이 희생되고 묻혔던 곳입니다. 병촌교회 성도들의 순교는 66명중 여자성도 39명 과 남자성도 27명으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그 숫자와 똑 갔습니다.  

 

 

 

이 거리는 일본사람들이 곡물을 수탈하여 강경포구를 통하여 일본으로 실어 강때는 대단히 번화하고 소 달구지등 시끄러웠던곳입니다. 지금은 한산하게 아주 조용한 시골 풍경 만이 그 시대를 잊으려는듯 합니다.

 

 

저 철길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기차가 달리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일본의 곡물 수탈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아니고 대중 교통수단으로  한가로이 이용되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