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조선의 마케도니아인 '이수정’
성지순례 | 조선의 마케도니아인 '이수정’ | ||||||||||||||||||
한국기독교 성지순례 ③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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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의 개종과 최초 세례자 이수정은 임오군란(1882.6.9)의 위기에서 민비를 충주로 피신시켰다가 무사히 환궁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에 명성황후는 생명의 은인인 이수정에게 벼슬을 내리고자 하였으나 이를 사양하고, 대신 일본의 신사 유람단 2진에 편승하는 고종의 특혜를 입어 박영효의 비수행원으로 일본행에 오른다. 그리고 일본에서 농학자인 쓰다젠을 만남으로 생의 놀라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쓰다젠은 이수정에게 성경을 선물로 주며 공자의 빛이 이 방안을 비취는 등불이라면 여기에 나오는 분의 빛은 이 세상을 비치고 도 남는 태양보다 더 밝고 위대한 빛이라고 소개하였다. 성경을 읽다가 예수를 영접한 이수정은 7개월 만에 야스까와 목사로부터 엄격한 세례문답을 거쳐 1883년 4월 29일 미국 장로교 선교사 녹스의 입회아래 로월정교회에서 야스까와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아 조선 사람으로는 최초 세례교인이 되었다.
최초 한글성서번역 이수정의 꿈은 조선도 복음을 받아들여 일본처럼 개화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선 한자로 된 성경을 조선의 서민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번역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루미쓰 선교사의 도움으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마침내 1884년 12월에 한글성경 마가복음서 1,000부를 발간하였는데 이것이 한국기독교역사상 최초로 번역된 한글성경책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펜젤러, 언더우드가 한국선교사로 제물포항에 첫발을 내디딜 때 그 성경을 들고 들어왔 는데, 이는 세계선교역사에 유래가 없는 역사적이고도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의 마케도니아인 이수정은 일본에 유학중인 국비유학생30여명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면서, 1884년 7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미국에 선교사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루미쓰 선교사의 번역으로 『미셔너리 리뷰 오브 더 월드(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라는 미국선교잡지사에 보내졌고, 그의 간절한 호소는 미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어 마침내 미국의 실업인 맥 윌리엄스가 조선선교에 쓰라고 5,000달러를 보내겠다고 연락을 하였으며 최초 미국방문 을 하던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등이 시카고, 워싱턴을 시찰할 때 동행하였던 감리교 목사 까우처 박사도 2,000달러를 흔쾌 히 내놓겠다는 편지를 감리교선교사 맥클레이에게 보내오기도 하였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손짓하는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고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바울의 선교로 유럽에 찬란한 기독교문화를 꽃피 울 수 있었던 것처럼, 이수정은 ‘조선의 마케도니 아 사람’ 의 역할을 함으로 한국기독교역사의 빛 나는 초석을 놓았다.
마침내 총신대학교 신대원캠퍼스 안에 “한국기독교 선구자 이수정” 의 기념비가 건립되어 그의 자랑스러운 업적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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